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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철학편지 (세계문학전집175)

철학편지 (세계문학전집175)
  • 저자볼테르
  • 출판사문학동네
  • 출판년2019-03-19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3-22)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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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재치와 기지, 사상이 한데 결합된 걸작 『철학편지』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5번으로 출간되었다. 귀족과의 다툼으로 망명생활을 하게 된 볼테르가 3년간 영국에서 지내며 써내려간 글들의 묶음으로, 당시 프랑스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였던 영국의 면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조국인 프랑스에 유머러스한 독설을 던진 작품이다. "구체제에 던져진 최초의 폭탄"이라고 평가받는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금서조치를 당했고, 볼테르에게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또다시 파리를 떠나 피신해야 했다. 추방의 산물인 동시에 새로운 추방을 초래한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평생 부조리한 권력과 광신에 펜으로 맞서 투쟁한 볼테르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그의 전 생애의 요약판과도 같은 작품이다.



    18세기 프랑스를 지배한 비판적 정신

    이성·관용·정의의 수호자 볼테르



    빛의 세기를 밝힌 위대한 사상가,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본명은 프랑수아마리 아루에로, 1694년 파리에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수학하며 라틴어와 수사학 등을 배웠고, 고전문학과 연극에 특히 관심을 가졌으며 언어와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다. 1717년 루이 14세 사후 섭정 오를레앙 공을 비방하는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고, 수감생활 동안 첫 희곡작품 「오이디푸스」를 집필했다. 출옥 후 이 작품의 초연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라신의 후계자”로 평가받았고, 이때부터 ‘볼테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문학적으로 인정받고 명성을 얻으나 1726년 한 귀족과의 말다툼으로 또다시 바스티유에 수감되며, 영국으로 망명을 가는 조건으로 곧 풀려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강한 환멸을 느끼게 된다.



    볼테르는 당시 프랑스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였던 영국에서 3년간 생활하며 사회적·사상적 자유를 만끽했다. 그곳에서 관찰한 바를 토대로 『철학편지』를 집필했으며, 프랑스에서는 1734년 출간했다. 1745년 왕실 사료편찬관이 되었고, 1750년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으로 베를린에 체류하게 되지만 베를린 아카데미 원장인 모페르튀이와의 논전으로 그곳 역시 떠나게 된다. 1758년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역 페르네에 정착해 대표작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출간했다. 이후 『백과전서』 편찬에 관여해 여러 항목을 집필했으며, 반봉건·반교회 운동의 지도자로서 인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불의에 관용으로, 광신에 이성으로 맞서 끊임없이 투쟁한 볼테르는 시, 희곡, 역사서 등 많은 작품을 집필했으나 그중 대다수가 금서조치를 당했다. 1778년 「이렌」의 상연을 위해 파리로 돌아왔다가 8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으며, 프랑스혁명 시기에 유해가 판테온으로 이전되었다.



    추방당한 철학자 볼테르의 사상과 재기가 한데 결합된

    『철학편지』 혹은 『영국에 관한 편지』



    18세기 초, 볼테르는 귀족의 멸시를 받는 평민의 신분이었다. 1726년 1월 어느 날 밤,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대귀족 가문의 자제인 슈발리에 드 로앙 샤보가 “볼테르 씨, 아니 아루에 씬가, 당신 이름이 뭐요?” 하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볼테르요. 내 이름은 나로부터 시작되지만 당신 이름은 당신으로 끝날 거요.” 모욕을 당한 로앙 샤보는 며칠 후 하인들을 시켜 그를 급습했고, 루이 15세를 움직여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시키기에 이른다. 볼테르는 곧 영국 망명을 조건으로 석방되었고, 그해 5월 영국으로 떠난다.



    영국에서 머무는 동안 그는 부지런히 영어를 익혀 영어로 일기나 논문을 썼고 그곳 사람들과 유창하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당대 작가인 알렉산더 포프, 조너선 스위프트, 윌리엄 콩그리브, 철학자 조지 버클리와 신학자 새뮤얼 클라크 등과 교유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관람했으며, 뉴턴의 연구와 로크의 철학에 관심을 가졌다. 18세기는 영국이 봉건귀족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가는 전환기였고, 볼테르는 영국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특히 감명을 받았다. ‘자유의 나라’ 영국에서 방대한 독서와 자료수집에 몰두했고, 이 망명생활은 곧 볼테르의 인생과 사상적 경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그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고 의회정치가 실현된 영국의 모습을 톺아보며 한 편씩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탄생한 『철학편지』는 영국의 정치·종교·사상·예술·과학 등 볼테르가 그곳에서 보고 느낀 모든 것을 망라한 책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면면을 관찰하고 프랑스와 비교하며 조국에 대해 유머러스한 독설을 날리는 이 작품은 ‘편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나 사적인 편지, 수신인이 정해진 편지가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는 편지, 열린 편지의 형태를 띤다. 대부분 영어로 직접 집필했고 1733년 8월, 런던에서 『영국에 관한 편지』라는 제목으로 먼저 출간했다. 당시 판본에는 『팡세』에 대한 볼테르의 비판인 「편지25 파스칼 씨의 『팡세』에 관하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이후 런던에서 출간된 최초의 프랑스어판 『영국에 관한 편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음해인 1734년, 현재 대표적인 원전으로 간주되는, 「편지25」를 포함한 『철학편지』가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영국의 자유와 관용에 관한 볼테르의 감탄이 녹아든 이 책은 프랑스의 정부와 종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져 출간하자마자 금서조치가 내려졌다. 더불어 체포영장까지 발부되어 볼테르는 또다시 파리를 떠나 연인 샤틀레 부인의 집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결국, 이 작품은 추방의 산물인 동시에 새로운 추방을 초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곳곳에서 특유의 신랄한 재치가 빛을 발하는 『철학편지』는 볼테르의 근대적 사고와 비판적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시대의 지성으로, 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평생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권력을 비웃으며 관념을 풍자하고 조롱한 볼테르의 정신은 2백 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우리가 진정으로 존경해야 할 사람은 무력을 사용하여 타인을 노예로 만든 사람이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정신을 지배한 인물이며, 세계를 파괴한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제대로 알게 만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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