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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어떻게
전쟁의 구렁텅이에 휘말리는가?
〈파이낸셜 타임스〉, 〈텔레그래프〉 선정 2021년 최고의 책
* 한국어판 저자 서문 수록 *
◎ 도서 소개
세계는 어떻게 전쟁의 구렁텅이에 휘말리는가?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그러나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제2차 세계대전 발화의 비밀
★한국어판 저자 서문 수록★
첫 번째 세계대전이 휩쓸고 지나간 후, 전쟁의 폐허에서 신음하던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를 갈망하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각자의 욕망으로 불타올랐다. 붉은혁명을 전 세계로 확장시키고자 했던 소비에트, 각자의 식민지를 지키면서 제국의 영달을 유지하기를 바랐던 영국과 프랑스, 감당할 수 없는 전쟁 부채에 신음하며 다시 일어서기를 소원한 독일, 아시아의 식민 제국을 꿈꾼 일본 등은 겉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각자의 이익을 위해 양립할 수 없는 갈등으로 치달았다. 입으로는 화합을 얘기하면서도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꾀하는 그 모습은 오늘날과 결코 다르지 않다. 유례없는 글로벌 시대를 살면서 하나의 세계를 이야기하지만, 세계 각지에서 발흥하는 극단적인 세력은 그 옛날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듯하다.
다시금 더없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양차 세계대전과 전간기에 대한 연구는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끝없이 발전하는 기술과 그에 따라 뻗어나가는 각종 이해관계들, 화해하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달으며 무기 사용을 서슴지 않는 갈등 국가들 등 지금의 우리와 닮은 모습에서 우리는 분명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소련 외교사의 “대부”라고도 불리는 전간기 외교사의 석학 조너선 해슬럼의 역작 《전쟁의 유령: 국제공산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2021년 출간 즉시 각종 미디어의 찬사를 얻으며 〈파이낸셜 타임스〉(역사 부문), 〈텔레그래프〉 선정 ‘2021년 최고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던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진정한 기원을 이야기한다. 전쟁에서 갓 벗어나 그토록 평화를 외쳤음에도 곧 또 다른 세계대전의 늪으로 빠져들었던 그 시기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리고 현재의 우리는 그 모습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전쟁의 유령》은 바로 그 답을 제시한다.
◎ 책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형성했다. 무슨 일이 어째서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며, 우리는 계속 그 교훈을 배워야 한다. _9쪽
철저한 자유주의자 에우헤니오 삼마르는 폭동 이후 1923년 11월 24일 〈라 베우 데 카탈루냐〉에 인터뷰를 실었다. 그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히틀러를 “기념비적인 바보”라고 선언했다. 미군 장교와 나눈 대화와는 대조적으로 이 인터뷰는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믿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_93쪽
영국인들은 불편한 일을 최대한 연기하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위원회를 조직하는 것이다. 명백한 일을 조사하고자 세워진 리턴 위원단은 조직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위원단은 국제연맹 총회의 1932년도 가을 회기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뛰어난 변호사로서 명성을 얻은 외무장관 존 사이먼 경은 정치인으로서는 언제든 자신이 편리한 대로만 말하며 “일생에 걸쳐 중립적 태도만 고수하는 성향”을 가졌다는 평판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_151~152쪽
“여기 이 방 안에 여섯 명이 있습니다. 예컨대 마이스키 동지가 우리 가운데 한 명을 공격하려 한다고 해봅시다.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가 합동해서 마이스키 동지를 두들겨 팰 수 있겠죠.” “그래서 마이스키 동지가 전혀 나대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몰로토프가 짓궂게 농담을 던졌다. 이것은 조만간 독일이 베르사유조약의 사슬을 끊고 나올 때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라며 스탈린은 말을 이었다. _219~220쪽
어떻게 그토록 빼어나고 지적인 수많은 이들이 그토록 그릇된 방식으로 상황을 다뤘을까? 이 이야기의 큰 부분은 바로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고 피를 말리는 볼셰비즘에 대한 집착이다. _359쪽
핼리팩스는 채넌에게 “모든 나치 지도자가 마음에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괴링까지도요! 누구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죠. 그[핼리팩스]는 방문하는 동안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고, 흥미로워했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는 나치 정부가 환상적이라고, 어쩌면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환상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핼리팩스는 독일인들이 “진정으로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자들”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이 필히 “그들과 어울려야” 한다고 믿었다. _372~373쪽
영국 정부가 저지른 실수는 2급과 3급 열강들에게 너무 성급하게, 아낌없이, 까다롭지 않은 조건으로 보장을 건네고, 소비에트러시아를 청원자 대하듯이 취급했으며, 우스꽝스럽고 치욕스러운 제안들로 시작했다는 점 이었다. 흥정을 통해 모든 양도를 불손하고 설득력 없게 만든 것은 추가적인 실수였다. 러시아와의 협상에 하급 관리들을 보내고, 이후 폴란드나 터키 같은 곳에는 더 낮은 지위의 군인들을 보낸 것이 세 번째 실수였다. 이 모든 것의 이면에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와의 거래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볼셰비키주의 러시아에 대한 깊고 극복할 수 없는 혐오가 자리했다. _424쪽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의 저항이 무너지는 속도에 경악했다. 몰로토프는 훗날 러시아인들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솔직하게 시인하면서 말했다. “그 누구도 폴란드 국가가 그렇게 나약하고 … 신속하게 와해되리라고는 믿지 못했습니다. …” _447쪽
그리고 피틴이 믿을 만하다고 여긴 원천에서 얻은 추가적인 경고가 베를린에서 날아왔을 때, 스탈린은 첫 장에 이렇게 휘갈겨 썼다. “(국가보안 인민위원) 메르쿨로프 동지에게. 당신의 그 독일 공군 참모 ‘정보원’에게 엿이나 먹으라고 하지그래. 그 사람은 ‘정보원’이 아니라 역정보를 퍼트리는 조달꾼에 불과하거든. I. 스탈린.” _502쪽
전간기는 우리에게 정치적 극단이 너무나도 쉽게 주류로 부상할 수 있다는 교훈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정치적 불안정성이 투자 신뢰도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혁명적 극단주의는 말할 필요도 없다. 호황기 동안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지도부 아래 등장한 극단적 정치 단체들은 (대규모 실업 또는 통제되지 않는 인플레이션을 통해) 경제가 파탄에 직면해 노동계급뿐 아니라 중간계급들이 강탈이라는 최악의 공포 앞에 먹잇감으로 전락했을 때, 너무도 쉽게 대중적으로 거듭날 수 있다. _514쪽